심포니 송 창단 3주년을 맞으며

2017-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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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포니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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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포니 송 창단 3주년을 맞으며...

2014년 봄, 뜻을 같이 하는 몇 분과 함께 모였다. 그해 8월 창단 연주를 하였다.
이후, 기적에 가까운 도움의 손길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심포니 송의 핵심 목표는 우수한 예술인들이 마음껏 연주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하고 우리의 음악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 품격 있는 음악을 선물하며 참신한 레퍼토리와 혁신적이면서 독창적인 프로그램을 생산하여 대한민국
최고 문화상품을 만드는 것이다.

쉼 없이 달려온 3년이었다.
끝없는 열정과 그에 비례하는 노력을 후원자, 이사회, 스텝, 단원들과 함께 힘을 다해 기울여왔다.
나의 모든 연주활동은 심포니 송에 전력투구하였다.
나의 삶의 중심이 심포니 송에 연결되어 있었다.
나의 꿈은 늘 심포니 송이 날개를 활짝 피고 먼 창공으로 날아가는 것이었다.
나의 새벽은 심포니 송의 연습실에서 악보를 탐구하는 것으로 시작하였으며 온종일 다양한 연습활동과 저녁시간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새로운 오케스트라를 만드는 행복에 취해 3년을 지내왔다.
지난 3년을 조심스레 스스로 평가한다면 창단초기의 목표를 향해 꾸준하게 나가고 있다고 보아도 무리는 아닐 듯하다.

돌이켜보면 지난 3년 동안 후회 없이 원하는 일들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진정한 행복이었다. 내 인생에 가장 화려한 3년이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창단초기에,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듯 가능성이 희박하게 보이는 우리의 행보를 향해 많은 분 들이 적잖게 우려를 표했다.
격려를 필요로 하는 분과의 만남에서 조차 오히려 나의 새로운 진화에 대한 도전을 포기하도록 종용하는 분들도 꽤 많았다.
그런 분들의 대체적인 반응은
“뜻은 좋은 데 요즘같이 어려운 세상에 어디서 필요한 경제적 지원을 찾으려 합니까? 함 선생님, 이제부터는 편하게 사세요!” 이었다.

심포니 송을 창단하고 운영하며 나는 놀라운 경험들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중 가장 핵심적인 발견은 신께서는 좋은 뜻을 가진 사람들에게 반드시 아름답고 최상의 것으로 응답하여 주는 것이었다.
더불어, 기대이상의 빠른 스피드로 전달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로 인해 우리가 하는 일들이 무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세상에 증명하기도 하였다.

창단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분들이 우리를 돕고 있지만 변함없는 사랑을 베풀고 계신 후원자분들을 간략하게 소개 하며
3주년을 맞는 소감을 대신하려 한다.

심포니 송을 후원해 주시는 분들의 흥미 있는 공통점은
사회에 본인의 선행이 알려지는 것을 반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분명히, 이런 사적인 관계와 일들을 적어 내리는 나의 의도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실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불현듯, 지금 나의
두뇌가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있을 때 이분들에 관해 조금씩 적어 두는 것이 올바르다는 느낌이 생겼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나의 단원들이, 나의 후손들이 그리고 우리 연주의 혜택을 받는 청중들이 이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이런 후원자들이 없었다면 다음의 기적과 같은 일들이 일어날 수 없었다.

예술의전당, 롯데콘서트홀 무대에서 마음껏 연주할 수 있도록 기회를 가진 우수한 연주자들의 예술적 행복;

천원만 내도 예술의전당 연주를 마음껏 들을 수 있던 수많은 어린이들과 그들의 부모들의 밝은 표정;

트럭무대 위에 올라와 음악을 듣던 티 없이 맑은 소록도 어린이들의 새로운 세상 경험;

용감무쌍하게 무대에 올라와 베토벤을 지휘하던 중부전선 전방부대 장병들의 신세계;

청춘을 교도소에 억울하게 머물고 있다고 생각하는 의기소침했던 젊은이들이 음악으로 위로 받던 시간;

추풍령산골의 순박한 어린이들이 들을 수 있던 따뜻한 음악의 행진;

외로움과 배고픔에 떠는 청량리의 노숙자 노인들이 어깨로 박자를 맞추던 흥이 넘치던 점심시간;

윙바디트럭에서 흘러나오는 오보에소리에 감동하여 눈물 흘리던 남해의 소녀 등

이 모든 사람들이 무슨 이유로 혜택을 받았는지를 알아야 우리 후손들에게 같은 일을 전달할 수 있으며 그런 선행의 반복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름답게 유지된다고 나는 믿기 때문이다. 누구를 바라보고 또한 누구를 본 받아야 할지 심히 헷갈리는 혼돈의 이 세대에서
극심해진 이기주의의 벽을 넘어 이런 선행을 베푸신 분들을 기록해 두어야 할 필요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되어 앞으로 꾸준히 적어갈
것이다.

심포니 송의 실질적인 주인은 후원자들이다.
그들이 없다면 심포니 송은 존재하지 않는다.
함신익과 그의 연주자들은 이들이 마련해준 잔치에 정성껏 음악을 준비하여 화려한 잔치를 즐기는 행복한 고객이다.

세계 어느 곳에도 오케스트라가 이익을 남기는 단체는 없다.
한마디로, 경제적인 후원 없이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가기관에서 또는 기업과 개인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그 주인은 경제적인 지원을 하는 개인과 단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분들이
우리의 주인이었으며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도왔는지를 기록해 두는 것은 중요한 역사기록이며 반드시 지켜나가야 할 사항이다.


노루홀딩스와 한회장님

2014년 늦은 가을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의 연주 후 지하1층 작은 공간에서 심포니 송의 마스터즈시리즈 연주의 리셉션이 거행되고
있었다. 내게 살며시 다가온 그는 “심포니 송이 자립할 수 있는 3년 후 까지 제가 돕겠습니다”

그 한마디로 충분했다.
그 이상의 어떤 말도 필요 없었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내게 설명하지 않았다.
후원에 대한 어떤 요구조건도 없었다.

내 주위를 맴돌던 수많은 사람들이 내가 진정으로 그들을 필요로 할 때 내 곁에 없었다. 그는 그런때도 나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모든 사람이 나를 멀리할 때 가장 그는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나를 지켜주었다.
그 누구도 크고 작은 풍파로부터 나의 작은배를 지켜주지 못할 때 그는 성큼 다가와 나의 견고한 구축선이 되어 주었다.

그는 낮은 자리에서 섬기기를 즐기는 독특한 취미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내가 주위 사람들에게 늘 얘기하듯 그를 이 세상에서 만난 것은 내게 엄청난 기적이요 인생의 큰 행복이다.

2014년 당시 큰 뜻을 갖고 오케스트라를 창단은 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지에 관한 해답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그의 한마디
말로 심포니 송은 기적을 만들게 된다. 당시, 자신감으로 가득한 모습이 밖으로 비쳐지는 나의 정체성 일 수 있겠지만 내면으로는 심히
외롭고 적막한 바다 한 가운데 있었다.

그는 세계최초로 윙바디 트럭을 이동가능한 콘서트홀로 변형시켜 전국을 일주 하겠다는 나의 괴상망측한 아이디어를 신속히 받아드리고
특수 제작하여 2015년부터 방방곡곡을 누비며 연주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최첨단의 음향시스템을 도입하여 최고의
음질로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다니며 최상의 음악을 전달하고 있다.

내가 그분으로부터 배운 사람 그리고 예술을 대하는 품격은 감히 내가 한국에서 지낸 25년의 어린 학창시절, 미국에서 보낸 34년간의
학업과 전문연주자 생활 - 그중 예일대학의 23년의 교수로서의 경험 - 지구촌 여러 무대에서 만났던 다양한 국적의 인간관계, 저명한
선배교수나 동료교수들, 내가 존경했던 스승님 등 누구도 이 분의 인품과 삶의 깊이에 근접할 수 있는 분을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단정한다.

지금은 내가 가장 좋아하고 따르는 분이고 나의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사이가 되었지만……
노루홀딩스의 한 회장님은 나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가 아니다.
학교 선 후배, 동네 아는 형, 종교단체, 친척관계, 사업파트너등 억지로 관계를 끼어 맞추려 해도 전혀 관계가 없는 사이이다.
심지어는 그의 주변에 음악을 전공하는 가족이나 친척도 없다. 어떠한 혜택을 바라는 사이도 아니다. 나는 그를 그의 친구의 소개로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그것도 십년이 안 되었다. 쉽게 말해 그는 나를 도울 아무 의무가 없는 분이다.

그는 모든 일에 신중하고 심사숙고 하다. 그러나 진취적이고 혁신적이다.
페인트 회사에서 출발해 이제는 미래 먹거리를 위해 세계를 누빈다.
신사중의 진정한 신사이다.
그는 아주 큰 인물이다.

지금부터, 그의 인간됨을 진정으로 알 수 있는 나의 경험중 몇 개를 나누려한다.

그는 남을 배려하는 것에 익숙하다. 상식적인 배려가 아닌 진심으로 상대방을 마음 깊은 곳에서 부터의 배려를 말한다. 골프공을 선물할 때 초청자가 라운딩 시작 전에 주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방식인데 그는 라운딩이 다 끝난 후 집에 돌아갈 때 선물한다. 골프를 치는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한 라운딩에 보통 볼을 몇 개씩 잃어버리게 된다. 나같이 형편없는 골퍼들은 많은 공을 잃어버린다. 골프공 몇 개가 무슨 큰 선물이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골프장에서 최고의 선물은 뭐니 뭐니 해도 골프공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라운딩을 마치고 다음 라운딩을 위해 볼을 선물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선물은 자신의 감사함을 돋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조용히 상대방에게 꼭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것이라는 개념을 내게 가르쳐 주시는 분이다.

어떤 때는 좀 심하다고 느껴지고 별일도 아닌데 너무 신경 쓰는 것이 아닌가 생각될 때도 있다. 모두가 당연히 받아드리는 제도나 시스템에도 그는 스스로의 범위에서 겸손과 배려를 실천하고 있다. 어떤 모임에 등록을 할 때였다. 그가 초청자로 예약을 해 두었고 그는 이 모임의 정회원이기에 그의 이름이 페이지 상단에 고딕체로 프린트 되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다른 게스트들은 오는 순서대로 각자 프린트된 그의 이름 밑으로 서명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였다. 누구도 그런 시스템을 오해하거나 기분 상해하지 않는다. 마침 그와 함께 일찍 도착한 나는 프린트 되어있는 그의 이름 밑에 나의 이름을 쓰려고 하였다. 그때, 그는 직원에게 그의 이름이 프린트되어 있지 않는 빈 페이지로 교환을 부탁하였고 자신의 이름이 맨 아래에 위치하도록 조정한 후 본인의 이름을 직접 쓰고 나의 이름과 다른 게스트들의 이름이 그 위로 오도록 배려하는 것을 보았다.

이런 이유가 그가 리더로 있는 노루그룹내에 노사분규가 없고 거래하는 기업들과 상식을 초월한 신뢰로 건실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의 이런 멋진 리더십 안에 거하고 있고 그런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 너무도 행복하다.

지금까지 그와 만났던 많은 모임에서 그는 언제나 제일 먼저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다. 내가 서둘러 약속시간보다 훨씬 일찍 나가도 그는 먼저 와서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다. 그가 주인인 윙바디 트럭연주에서도 그는 대중 앞에 나서기를 싫어한다. 고려대 잔디광장 또는 삼양동 미양초등학교 운동장의 연주에서도 전혀 드러나지 않는 곳에 조용히 와서 음악을 감상하고 본인이 도와줄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돌아간다.

일반적으로 기업을 하는 사람들은 선행을 드러내고 알리지는 않더라도 알게 모르게 알려지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다르다.
어떤 오후, 국내 최고 일간지 기자가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트럭을 개조해 전국에 음악을 실어 나르는 심포니 송의 후원자 한회장님을 인터뷰하고 그것을 기사로 내려고 하니 회장님께 말씀 드려주세요” 나는 그에게 여쭈었고 그의 대답은 예상대로 지극히 정중하게 “사양하는 것이 좋겠다” 라는 것이었다.

그가 지니고 있는 기부와 후원의 개념은 남이 모르게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작은 것을 기증하고 수십 명이 벌떼처럼 모여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심지어는 가여운 어린이들을 모델로 자기들이 봉사한 것을 증명하려하지 않는가? 이런 수많은 모순적인 단체들의 ‘봉사’가 우리가 고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남을 위한다는 봉사의 개념인가? 반면, 그의 진정한 ‘봉사’는 이런 지극히 계획되고 정돈된 기부정신을 심히 부끄럽게 한다.

어떤 기업이 한 단체를 집중적으로 지원해주는 경우 회사 내에서 후원에 관한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으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기본 정신인 기업이 투자대비 보이는 수익이 전혀 없는 신생오케스트라에 전격 투자하는 것에 대한 의견이 분분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가 확고한 오케스트라 지원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외부도전에 시달리고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심히 송구하다.

예술단체에 후원하는 기업을 시상하는 ‘한국메세나 대상’ 이라는 시상제도가 있다. 심포니 송은 그의 후원을 통해 어떤 파급효과가 있고 다른 기업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이 상을 노루홀딩스와 한 회장님이 수상하도록 추천할 수 있다. 지난 3년간, 수차례에 걸친 우리의 의도를 알리고 필요한 서류작성의 협조를 구했지만 그는 정중히 거절한다.

행복하게도, 그와 나는 시차가 13시간 이상 차이가 나는 세계정반대 지역에 서로 떨어져 있을 때에도 SNS로 소통을 한다. 그러나 맨 마지막 인사는 그가 마무리 한다. 나는 예의상이라도 내가 마지막 문장을 장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여지없이 이어지는 그의 마지막 멘트는 나로 하여금 “이쯤에서 내가 그만 두어야 회장님께서 편하시겠지” 라는 심정으로 그가 끝을 맺도록 한다. 작은 일에도 남을 낮게 보는 일이 없으시며 누구에게도 조용한 바리톤 음으로 존대어를 쓰시는 이분의 인격의 깊이는 어디까지 일까? 깊은 우물에서 서서히 반사되는 빛처럼 그의 인격은 그 깊이를 셀 수가 없고 다만 그 빛을 바라볼 뿐이다.

“저는 베토벤의 후기작품을 좋아합니다!”
차라리 이렇게 한마디 던지는 후원자들에게는 어떤 선물이 적합한지 판단하기 오히려 쉬울 때가 있다. 그러나 그는 연주 후 조용히 다가와 “너무 감동적이어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네요!” 라는 멘트가 전부이다. 그의 예술에 대한 존경과 젊은 우리의 도전을 격려하는 것이 그의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가진 것을 나누고 특히 가치 있는 것을 어려운 사람들과 귀하게 나누고자 하는 그의 심정을 우리는 기억하여야 한다.

그의 회사에 또는 지정하는 장소에 심포니 송이 연주회를 가겠다고 수차례 제의를 하여도 사양한다. 우리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좋은 연주로 보답하는 것인데 그것마저도 부담이 될까 거절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소규모 실내악단의 연주 제의도 정중히 사양한다. 후원자체에 만족할 뿐 그 외의 어떠한 보상도 원하지 않는 진정한 후원하는 방법을 생생하게 가르쳐주고 있다. 대신, 그는 예술의 전당과 롯데 콘서트 홀 중간쯤에서 연주 후에 가장 먼저 일어나 기립박수로 우리들을 격려하고 예술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를 존경하고 그에 대한 감동을 간직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나의 음악과 우리가 가는 길에 동감하고 응원하기 때문이다. 순수한 음악에서의 감동이 가장 강력한 우리의 소통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나는 그를 위해 무엇으로 보답 할 수 있는가? 그가 우리에게 베푸는 무한한 사랑과 관심을 어떤방법을 보상할 수 있는가?
이를 고민할 때 마다 가슴이 답답하고 목이 메어온다. 우리는 어떤행위로 그가 겪고있는 외로움과 예술에 대한 갈증을 위로 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해답을 찾으려 하지만 나의 선택은 그다지 많은 것 같지 않다. 내가 받은 이 축복을 S.O.N.G 을 통해 올바른 음악으로 후세에 전달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Pass It On’ - 우리가 받은 사랑을 남에게 전달하는 그런 아름다운 사회를 만드는 그의 열정, 겸손, 그리고 예술을 존중하는 순결한 예술지원이 우리가 공유하는 지구를 아름답게 하고 유능한 젊은 음악인들에게 새로운 도전을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이 땅에 그분 같은 사람이 열 명만 있어도 우리가 꿈꾸는 예술을 진심으로 아끼고 존중하는 이상적인 사회가 될 수 있다고 나는 감히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랑하는 나의 딸아! 사랑하는 나의 신실한 연주자들이여! 우리는 그 분 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최고의 무대에서 최고의 음악을 마음껏 펼치고 있다. 그리고 이제 우리의 음악이 전 세계로 진출할 날이 멀지 않았음을 피부로 느낀다. 우리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한 그분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넘친다면 그와 그의 가족 그리고 그가 경영하는 기업을 위해 기도하기를 바란다.

그는 이미 심포니 송의 음악을 온라인, 오프라인 그리고 트럭에서 수백회의 연주를 통해 수백만 명에게 전달했으며 앞으로도 무한한 가능성으로 전 세계에 같은 방식으로 예술을 통한 사회 공헌의 역할을 감당할 것이다. 나는 그가 겸손과 자비의 미덕을 전파하는 진정한 휴머니스트임을 세상에 당당하게 알리고 싶다.

그리고, 우리 심포니 송의 식구들은 최소한 이런 후원자를 기억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 함신익 -